
강화 12진보(鎭堡) 가운데 하나이다. 1658년(효종 9)에 강화유수 서원이(徐元履)가 설치하였다. 그 뒤 1679년(숙종 5)에 축조된 오두(鰲頭)·화도(花島)·광성 등의 돈대(墩臺)와 함께 오두정 포대를 관할하였다. 1745년(영조 21)에는 돌로 성벽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두어 ‘안해루(按海樓)’라고 하였다.
1871년(고종 8)의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. 곧 이 해에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는데, 광성·초지(草芝)·덕진(德津)·덕포(德浦) 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하여 물리쳤다. 하지만 4월 23일에 초지진은 미국 해병대 450명의 상륙으로 인해 점령되었고, 이튿날에는 덕진진이 함락되었으며, 곧 광성보가 공격을 받았다.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(中軍) 어재연(魚在淵, 1823∼1871)과 수하의 장병은 열세한 무기로 힘껏 싸웠으나 중상을 입어 움직이기 어려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.
1976년에 파괴된 성가퀴와 문루 등을 복원하고,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과 어재연의 쌍충비각(雙忠碑閣)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.
[네이버 지식백과] 강화광성보 [江華廣城堡] (한국민족문화대백과, 한국학중앙연구원)